의향 장흥 애국혼이 깨어나다
- 작성일
- 2020.11.27 21:04
- 등록자
-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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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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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안중근 의사 다큐멘터리_9분 51초.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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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이후에 경제 성장룔 세계 12위, 5,100만여명의 인구성장을 기록하며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국가를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엔 큰 아픔이 있습니다. 국권피탈로 나라를 빼앗긴 채 역사의 단절 시기를 겪어야 했던 일제강점기. 하지만 한민족의 진한 아픔을 가슴에 새기고 굳건히 조상들의 기개를 계승하며 애국혼을 지켜온 후손들. 그들이 뿌리를 내려 세운 의향의 도시, 선조들의 희생정신이 아직 살아숨쉬고 있습니다.
먼저 생전 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헤이룽장성의 위치한 천만 인구의 도시 하얼빈, 하얼빈은 러시아 철도기지가 세워진 이래 상업과 교통의 요충지로 발달하여 중심도시로 변화됐습니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계서 1909년 10월 22일에 오셔서 26일 거사를 치르시고 11월 1일까지 머물렀던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 후 고결히 형장의 이슬로 순국한 안중근 의사. 그는 대한민국 항일투쟁의 상징이 됐죠. 무명지를 절단하며 선열로서 고국에 헌신할 것을 맹세한 의인 안중근. 시간을 거슬러 당시 안중근 의사의 11일간의 행적을 따라가 보려는데요. 오로지 이토 히로부미를 단죄하겠다는 결언을 다지며 무작정 오른 하얼빈행. 긴박하게 흘러간 사흘간의 시간동안 확실하지 않은 이토의 소식을 탐문하려 이 거리를 얼마나 거닐었을까요? 그리고 거사의 계획을 세우면서 또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갈등에 사로잡혔을까요?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청정 장흥! 산과 바다, 강과 호수가 어우러져 사계절 푸른 곳이 넘실대는 이곳은 풍부한 문화유산과 더불어 항일 투쟁의 역사를 간직한 의향의 도시입니다. 호남의병과 동학농민혁명의 최후 격전지. 그리고 독립운동으로 이어진 항일의 본향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의향의 이름에 걸맞게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이곳 장흥에서 애국영웅의 얼을 느낄 수 있죠. 안중근 의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 아무런 연고도 없는 장흥에 안중근 의사의 인연은 어떻게 맺어진 것일까요? 그 인연을 따라 찾은 곳은 장흥군 장동면에 위치한 해동사. 이곳은 항일의 상징인 안중근 의사의 사당이 마련되어있습니다.
“1955년도에 6·25전쟁이 끝나고 먹고 살기가 힘든 시절에 순흥 안씨 후손들은 안중근 의사 후손이 없어서 추모제를 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후손 중에 한 분인 안홍천 선생이 장흥 유림의 지도사셨습니다. 안홍천 선생께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찾아뵙고 우리가 안중근 의사 사당을 짓고 제를 모시겠다 허락을 받고 해동명월이라는 휘호를 받아서 이곳에 안중근 의사 사당인 해동사를 짓고 올해로 65년재 순흥 안씨 후손들이 추모 제향을 올리고 있습니다.
잊혀져가는 역사가 되지 않도록 후손으로서 한민족의 얼을 지켜 나가는 장흥.
그 정신이 바로 의향의 도시를 세운 자긍심일 것입니다. 해마다 음력 3월 경건한 분위기 속 안중근 의사 추모제가 열립니다. 1955년 안중근 의사의 위패 봉환식 절차를 그대로 따라 예를 갖춰 넋을 기리는데요.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아직 찾지 못했고, 최후의 유언처럼 아직 고국으로 반장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애국혼이 후손들 가슴 깊숙이 새겨진 이상, 그의 정신과 신념은 이곳 장흥 해동사에 안장된 것이나 다름없을 겁니다.
“안중근 의사하면 생각나는 것은 독립운동입니다. 우리나라를 살리는 겁니다. 애국정신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우리 후손들이 본받자는 것이고요. 저 역시 그분의 숭고한 뜻, 32세의 나이에 나라를 위해서 적을 착살하고 자신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요즘 젊은이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겁니다. 그 자체를 존경하고 추모하고 싶습니다.”
32살의 젊은 청년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무릅쓴다는 것. 무명지를 절단하고 선혈로써 구국에 헌신을 맹세한 안중근 의사의 결의는 지금의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일임이 틀림없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기개는 법정에서 더 빛이 났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모친은 조마리아 여사. 조마리아 여사는 항일 투쟁을 위해 고국을 떠나는 안중근 의사에게 집안일은 생각지 말고 최후까지 남자답게 싸우라고 말하며 그의 구국항쟁을 격려하기도 했죠.
“조마리아 여사께서 마지막 가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한 대목을 읽어드리려고 합니다.”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말고 죽으라. 네가 사형형을 받은 것이 억울해서 공소한다면 그것은 네가 일본에 너의 목숨을 구걸하는 행위이다. 너는 대한을 위해서 깨끗하고 떳떳하게 죽어야 한다. 아마도 이 편지는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내세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조마리아 여사께서 마지막으로 아들 안중근 의사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대목입니다.”
체험교육관 애국탐방로 해동명월 파크까지 이곳 해동사는 안중근 의사의 호국정신을 그대로 재현한 교육의 현장으로 거듭날텐데요. 역사문화 관광지로써 역사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교육의 장으로써 장흥은 더 발전하고 있습니다.
“애국 탐방로를 짓고 기념관과 기념공원을 만들어서 안중근 의사를 중심으로 또 가까운 곳에 있는 이순진 장군의 종사관이었던 정경달 장군을 중심으로 우리 장흥지역을 의향 장흥답게 의병 혼합의 역사공원으로 발전시켜나갈 계획을 세우고 지금 착수 중입니다.”
한민족의 지난 아픔을 새기고 조상의 기개를 지키는 일. 장흥은 머나먼 땅에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110년 역사의 호국정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미래 100년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를 추모하며 기억하고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