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
Being in This Place
서OO(장흥읍)
장흥에 온 날 : 2016. 8. 23.
장흥에 오게 된 배경과 주민들과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
탐진강과 우드랜드를 제가 경험했던 나라들과 비교 설명하고 정신적 healing up 할 수 있는 곳
향 후 죽음에 이르는 병이 있을 때장흥에서 삶을 마감 하겠다는 내용.
Come in this place !!(장흥에 오세요)
See in this place !!(장흥을 보세요)
Experience in this place !!(장흥에서 느끼세요)
Being in this place !!(장흥에서 사세요)
위에 언급된 네 마디가 내가 생각하는 답이다
2016년 8월 어느 날 나는 나이 먹고 가족과 떨어져 아는 사람 없고, 의지할 사람 없는 낯선 땅 낯선 곳에 정착하기 위해 장흥읍 사무소에서 전입신고를 했다.
전입신고를 한 지 5분쯤 지났는데 장흥군수님 명으로 발송된 “장흥군민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는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세상에, 전입신고했는데 ‘축하한다’는 문자를 받다니! 아무튼 그 문자는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나는 기분이 좋기도 하고 묘하기도 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나중에 전입신고를 한 사람은 쌀도 제공받았다던데 福도 없어 ㅋㅋ)
나는 전입하기 1년 전에 LD 마트 입구에 있었던 수산물 코너에서 6개월 동안(2015년 10월부터 2016년 3월까지) 근무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 만났던 손님들과의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당시 마트 주변에 병원이 있었는데 아침 일찍 병원 약 처방을 받 거나 물리치료를 마친 할머니들이 마트에 오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수산코너 단골이 되시기도 했는데 그분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나의 작은 일과 중 하나였다.
할머니들은 영감하고 결혼해서 자식들 낳고 키우며 먹고 살려고 죽도록 일만 했던 사연들, 자식 며느리 손자 손녀 자랑도 하고, 이제 살만하니까 영감은 죽고 자식들은 객지에 나가 살아 밤마다 벽보고 얘기한다며 탄식의 긴 한숨을 쉬기도 했다. 몸이 아파 거동(擧動) 못 하는 영감이라도 옆에 있었으면 말이나 걸어 볼텐데 아쉬워하는 그분들을 위해 나는 생선회 뜨고 남은 뼈를 따
로 모아 놨다가 사장님 모르게 드리곤 했다. 사장님이 왜 생선 뼈 파는 내용이 없냐고 의아해 하면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근무 계약 기간이 종료되었고 나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서 일을 하게 됐다. 장흥에서 일할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6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나에게 정말 많은 심적 변화가 생긴 것을 本家(광주)에 와서 알게 되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장흥의 삶을 꿈꾸게 되었다.
나는 24년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생활을 하다가 2007년 명퇴를 앞두고 무엇을 할까 고민고민하다 요리를 배웠다. 요리를 배워두면 먼 훗날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가 생겼을 때 용돈을 주는 것보다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하면서 사랑을 보여주면 핵 가족시 대에 그나마 대화의 場이 열리지 않을까 해서 배웠고, 나이를 먹어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배우게 되었다. 그 배움을 계기로 나는 요리사의 삶을 살게 됐다.
장흥읍 동교 2길 6(진송 호텔 맞은편)에서 2016년 10월부터 구루메 참치 초밥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구루메 뜻 : 일본 후쿠오카 현의 소도시 - 해외 첫 출장지, 프랑스어 : 美食家)
가게 오픈하는 과정에서 아내와의 재미난 Epsoide가 있어서 소개하겠다.
시골에서 초밥가게를 오픈한다는 계획을 세운 나는 아내에게 쉽게 나의 뜻을 내비칠 수 없었다. 가게 오픈은 아내의 지갑이 열려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참고로 내 아내의 지갑은 악어 지갑이다. 돈이 지갑에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은근슬쩍 잔머리를 썼다. 아내가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혹시 해외나 국내로 여행 가고 싶은 곳이 있느냐?”물었더니, 아내는 유럽의 스페인과 그리스 아테네 그리고 홍도와 흑산도, 친구가 살고 있는 경주에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내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이 모든 소원을 한 달 이내에 이뤄 주겠다고 약속했다. 스페인에서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개최될 때 3개월 정도 근무한 경험도 있고, 그 이후에는 아테네에서 근무한 적이 있기에 추억여행 간다는 기분으로 정해진 날짜에 스페인 마드리드와 그리스로 여 행을 갔다.
영화‘엘시드’촬영지이기도 하고 그리스도교와 이슬람문화가 조화를 이뤄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전주 한옥마을 같은 느낌인 톨레도 지방과 그리스 아네테 광장,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노래 가사 말이 있는 코린트 지역(사도 바울 초대교회) 여행하는 7박 8일 동안 나는 의도적으로 장흥에 가게를 오픈하겠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귀국 후 예정대로 홍도와 흑산도를 여행하면서 홍도에서 소주를 마시며 말을 꺼냈다. 장흥에서 살아보니 공기도 맑고 사람들도 순수하고 때묻지 않아 좋더라, 또 나이도 먹고 했으니 일당으로 이 지역 저 지역 돌아다닌 Vagabonde(방랑자) 생활을 접고 장흥에다 조그만 가게를 열어 정착하고 싶은데 어찌 생각하냐 물었다. 아내의 대답은 한마디로 No~~~~. 나는 계속해서 아내를 설득했다. 결국 내게 설득당한 아내는 경주까지 여행을 끝내고 필
요한 금액을 준다고 했다. 나는 이틀 뒤에 계약을 하기로 약속을 해둔 상황이라 아내에게 사정을 말하며 일단 계약하고 나서 경주에 가자고 약속했다.
드디어 정해진 금액이 아내의 악어 지갑에서 내게 입금이 되었다. 로또 맞은 기분이었다.
그 이후 경주는 갔냐고요?
미쳤어요? 돈이 입금되었는데....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계약하고 가게 인테리어, 허가 등 여러 가지 일을 핑계로 안 갔다. 약속을 안 지킨 내게 성이 났던지 아내는 가게 오픈할 때 오고 지금까지 한 번도 오지 않고 있다.
가게 개업할 즈음 엘디마트 수산물 코너 단골이셨던 할머니들은 떡도 해오시고, 쌀도 가져오시고, 고추 마른 것도 가져오시곤 하였다. 그중에 몇 분은 벌써 돌아가셨다 소식도 들었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손님과 관련된 가슴 아픈 사연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를 소개하겠다.
작년 초가을쯤으로 기억되는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점심시간에 초밥을 사러 오셨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매일같이 오셨다. 초밥 주문 내용도 언제나 똑같은 것이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아서 한 번은 아주머니께 여쭤봤다.“아주머니! 장흥에서 못 뵌 분 같은데 어디서 오셨어요? 오실 때 마다 얼굴이 어두운데 무슨 일이 있으세요?”아주머니는 자기는 서른네 살 먹은 아들이랑 광주 북구 운암동에서 살았는데 박사과정을 공부하던 아들이 자꾸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전남대 화순병원에서 검사를 해보니 뇌종양 말기라고 앞으로 3개월 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단다. 그런 아들을 위해 공기 좋은 곳을 찾다가 장흥을 알게 되어 집을 팔고 이곳으로 이사를 왔단다. 다른 것은 못 먹는 아들이 초밥은 먹어서 날마다 초밥을 사러 오는데 그나마 이것이라도 먹으니 마음에 위안이 되지만 사가지고 간 초밥을 아들에게 건네줄 때마다 아들의 생명이 단축되어 가는 달력의 날짜를 바라보면 아들과 헤어져 갈 날이 또 하루가 지나간다 하면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고 눈물지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초밥을 사 가는 날짜가 이틀에 한번 삼일에 한번, 일주일에 한번, 10일에 한번 꼴로 줄어들었다. 안부가 궁금한 어느 날 아주머니가 오셔서는 ‘오늘이 이 초밥 사 가는 것 마 지막일 것 같다’고 하셔서 나는 그만 망연자실했다. “장흥에 살아본께 어짜요”수기를 쓰면서 그때를 생각하니 눈물이 흐른다. 그 뒤로 아주머니의 소식은 모른다.(아주머니 늘 건강하세요.)
장흥의 9景 중(7경은 가지 못했음)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곳은 우드랜드와 탐진강 주변이다. 그 이유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나의 상상력 때문이다. 오해하기 말기를 바란다. 나는 일주일에 네 번 정도 아침마다 탐진강 주변을 조깅한다. 조깅할 때마다 탐진강을 파리의 세느강이라고 생각하면서 달린다. 세느강처럼 유람선은 다니지 않지만 말이다. 파리에서는 매년 6월부터 8월까
지 세느강 주변에 모래와 의자를 갖다 놓고 외부 관광객에게 의자 사용료와 입장료를 받으며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나는 탐진강 주변 공연장을 지나칠 때도 세느강 주변이라고 상상을 한다. 그리고 탐진강에는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세 개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곳은 두 번째 교각 밑이다. 이따금 저녁에 일을 마치면 소주를 한 병 들고 가서 마시며 물소리 바람소리를 느껴본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은 기분이 아주 업(up) 된다. 징검다리를 바라 보면서 황순원의 소나기 소설속의 주인공이 되보기도 하고, 교각 위에서는 12-14세기 르네상스 발생지인 이탈리아 피렌체의 신곡 저자인 단테가 아홉 살 때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던 베끼오 다리를 연상하기도 한다. 그럴 때 탐진강은 베끼오 다리 밑을 흐르는 아르노 강이 돼곤 한다. 요즈음 조명공사를 한다고 조감도를 세워 놨던데 완공되면 날마다 찾고 싶은 아름다운 저녁강이 되리라 생각한다
또한 편백나무로 둘러싸인 우드랜드는 뉴질랜드 북섬에 있는 영화 쥐라기 공원 촬영배경인 래드 우드 수목원과 거의 흡사한 것 같다. 그곳에 가면 다양한 Healing course가 있는데 우드랜드 관계자들이 꼭 시간을 내어 뉴질랜드 레드우드 수목원을 한번 견학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두에 언급되었던 것처럼 예순 살이 넘은 나이에 학연(學緣), 지연(地緣), 혈연(血緣)이 없는 낯선 땅 낯선 곳에서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살아가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서 살기를 결정했기에 앞으로 나 자신을 위해 다른 생각 않고 살려고 한다. 아이들도 다 컸고 그동안은 가족들을 위해 살아왔다. 나도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으니 이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행복은 무엇일까? 행복의 의미는 상대적 가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본인의 절대적 가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삶의 가치(value of life)를 어디에 두느냐는 중요하다.
사람은 생자필망(生者必亡) 살아있는 자는 반드시 죽음에 이르고
과욕필패(過必敗) 욕심이 많으면 반드시 실패하니
소욕다시(小慾多施) -욕심을 버리고 많이 베풀어라- 하면서 삶을 마무리 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구루메 식당을 운영하다가 점점 기력 없어질 즈음, 미국 민요 클레멘타인 노래 가사처럼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에서 아무도 모르는 개 한 마리’와 살고 싶고, 그러다가 바다가 보이는 그곳에 영원히 묻히고 싶다.
그런데 장흥 읍내 부동산 중개소에 땅값 문의를 하면 바다를 품고 있는 회진, 대덕, 수문 땅값이 너무 비싸다.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나의 행복을 위해 부동산 중개소 문을 계속 두드려보겠다. 운이 좋으면 값이 싼 땅이 내게 올지도 모른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