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려
살기 좋은 장흥!
양OO(장흥읍)
장흥에 온 날 : 2019년 7월 15일
장흥남자와 결혼 후에 소소한 이야기
#93일
나의 직업은 사진작가였다. 흑백사진 전문이며, 남이 볼 수 없는 곳을 찍는 사진작가, 병원에서 근무를 잘하고 있던 나에게 한통의 전화가 왔다. “괜찮은 남자 있는데 만나볼래?”라는 물음에 생각을 하기도 전에 “넹” 답변해버렸다. 그 대답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날짜가 정해지고 정해짐과 동시에 난 탄수화물과 이별하였다. 원래 여자는 그런법이다. 남의 결혼식을 가더라도 일주일은 굶고 가는게 여자다. 하늘이 노래질 만큼 굶다 보니 일주일이 흘렀다. 그리고 약속된 시간이 찾아왔다. 커피숍의 문을 여는 순간. 그때도 늦지 않았다. 돌아갔어야 했었다. 하지만 마동석 같은 저 남자를 보는 순간. 돌아가다간 맞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난 2시간동안 세뇌를 당했다. 사업하는 사람다웠다. 나도 모르게 계약서에 이름을 쓰는 듯 홀렸다. 얼마나 홀렸으면 커피값도 내가 지불했다. 그의 말빨은 국회로 보내기에도 충분했다.
“첨단에 산다고 생각하세요. 장흥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그 남자는 입에 이 말을 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항상 약속시간에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 말처럼 첨단 사는 남친이라 생각하고 만남을 이어갔다. 현실적이고 낭비 없는 그의 성격에 자꾸 혼이 나가게 되었고, 뒤도 안보고 결혼을 준비하게 되었다. 결혼준비 그거 보통 아니었다. 양가 상견례부터 웨딩포토까지, 한주 한주가 바삐 지나갔다.
93일째,
난 예식장에 주인공 신부가 되어있었다. 아직도 실감이 안나는 결혼생활, 이게 맞게 살고 있는 것인지 결혼을 두 번 해보지 않아
알순 없지만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다.
#시골녘
처음 장흥에 올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학동에서 티켓을 샀다. 좌석이 표시도 안된 묘한 차표를 받았다. 지나가는 금호 고속버스를 타면 된다고 한다. 혹시나 기사님이 그냥 가실까? 손이 불나게 흔들어 회진-장흥이라 쓰여진 버스를 타게 되었다. 그 남자 말로는 터미널에 내리면 된다고 하였다. 장흥터미널에 도착 순간 장흥에 도착한 줄도 모르고 뚤레뚤레 구경만 하고 있었다. 기사님이 장흥이라고 알려주셨다. 난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동네가 무척이나 더웠다. “아 3층이상 건물이 드물구나 그래서 그늘도 없는가 보네”
그리고 남편과 동네를 거닐게 되었다. 남편이 길치인 나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무조건 동쪽으로 가면 집이 나와 길을 잃어버리더라도(저쪽에 후지산같이 생긴 산을 가르키며) 무조건 동쪽으로 가면 된다하였다. 정말이지 신기했다. 지금도 혼자 다니다가 길을 모르겠으면 후지산을 보며 동쪽으로 걷다 보면 희안하게 집
에 올 수 있다. 저녁에 남편과 함께 산책을 자주 나간다.
탐진강변을 걷고 주공쪽으로 코아루 쪽으로 해서 자주 걷는다. 작년에는 참 놀라웠다. 웅웅~~ 개구리 소리라고 한다. 난 전라도 개구리는 다 코아루 앞에 사는 줄 알았다. 지금은 정겨운 소리처럼 적응 되었다. 하루살이와 모기는 왜 그리도 많은 건지. “다음주부터는 하루살이가 줄어들 거야 농약할 때 됐거든” 남편말은 귀신 같이 맞아 떨어졌다. 시골의 저녁은 언제나 한가 했다. 급할 것도 없었으며, 변화에 적응하기 좋은 곳이었다.
#지역사회?
남편은 사업가다. 모임도 겁나게 많이 다닌다. 같이 중앙로를 산책하다 보면 걷는 사람의 거짓말 좀 보테자면 절반은 남편의 선배, 절반은 후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좀 오바하자면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가 없다. 밥먹다가 인사하고 인사받고, 남편이 고개 움직이는 미러링을 계속해야 된다. 동네에 무슨 회장님들이 그리 많은건지, 어르신들의 절반은 회장님인 것 같다. 아는 형님 가게 가서 밥을 먹고, 아는 사장님 가게에서 술을 마시며, 아는집에서 물건을 구매한다. 아는 만큼 할인은 가능하며, 친할수록 현금으로 결재한다. 덜친하면 카드로 결재하는 우리남편, 나름의 원칙이라 하는데 나는 뭔 속인지 알수가 없다.
지역사회를 나쁘게 생각하면 한없이 불편할 수 있는 것이 겠지만. 좋게 생각하면 한없이 편한 세상인 것 같다. 군청에 민원 넣는것도 이왕이면 보기 좋게 해줘야 한다며. 아는 사람에게 먼저 물어보고 민원 넣는다. 희안하게 일처리는 빠르게 된다. 택배를 남편 이름만 써서 보내도 택배가 묘하게 우리집까지 오는 것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700만원의 늪
결혼을 준비 하던 시절, 남편은 결혼 후에 광주에 아파트 하나사서 광주에서 장흥으로 출퇴근을 할 수 있다며 나를 꼬드겼다. 32년을 광주에서 살아온 나에겐 당연, 광주에 사는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을 쯤이였다. 장흥에 남편이 결혼전에 집을 사놔서 주말부부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던중 안내서를 한 장 내미는게 아닌가? “장흥에서 살면 700만원 준다 같이 3년만 있어 보자”700만원에 눈이 똥그래진 나를 유혹했다. 거기에 옵션으로 출산장려금 300이라는 팜플렛과 함께. 난 유혹에 넘어가 버렸다. 이미 늦어버렸다 장흥에 살다보니, 슬로시티같은 곳에서 너무 편하게 살았다. 마음도 몸도 장흥에 적응이 되어버렸다.
아파트 분양 전단지를 보면, 지하철에서 5분거리, 터미널에서 5분거리, 1키로 안에 초중고 학교. 이른바 역세권이라고 무진장 광고를 한다. 평당 1500이 넘는 가격에 역세권. 장흥은 온 동네가 역세권이다. 그것이 장흥읍에 사는 나의 특권이다.
결혼장려금, 출산장려금, 산후조리, 신혼부부 월세지원 등등 무진장 지원이 많이 나온다. 뭐든 광주보다 많이 주고 잘해준다. 그런거는 참 좋은 곳이다. 동네전체가 인구늘리는게 혈안이 되어있다. 내가 처음 장흥에 왔을때도 주변사람들이 텃세 없이 잘 품어주셨다. 항상 고마운 시골의 정인 것 같다.
#슬로우시티
남편은 어릴때부터 성적이 반에서 3등이하로 떨어져 본적이 없는 수재라고 하였다. 어쩐지 말하는게 똑부러지고 괜찮다 했더만, 알고봤더니 초등학교는 분교였다고 한다. 세상에 한반이 3명이였다고, “라떼는 말이지”로 시작하는 동갑내기 남편의 과거사는 참으로 화려하다. 어릴쩍 3학년때부터 경운기를 몰고 다녔고, 소를 줄에 매달아서 강뚝에 매놨다고 하는데, 도대체 밑을수가 없다. 우리 시댁은 부산면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8시만 되면 가로등 빼고 동네가 조용 조용한 시골녘이다. 시골분위기 보면 조금 남편말도 이해가 되는 편이다.
출산후에 슬슬 기회가 될 때마다 남편따라 운전하러 나간다. “장흥에서 운전할때는 애매하다 싶으면 가만히 있어”고추장인지 된장인지 말도 안되는 말로 나를 또 현혹 시키지만 운전하다 당황할때면 TV에서 나오는 김여사처럼 가만히 있는다. 그럼 다른 운전자가 다들 알아서 비켜서 가신다. 지역사회의 운전법이라 다들 급하지가 않아 운전하기 편한 동네라고 생각된다. 온 동네 사람들이 급한것도 없고, 나긋나긋하며, 친절하다고 생각된다.
장흥외곽 바닷가 쪽에 집이나 한 채 만들어 우리 친정엄마, 아빠를 노후에 모시고 싶을 정도로 여유 있는 곳인 것 같다. 땅값도 그리 비싸지도 않고, 시골빈집들도 저렴한 가격에 매입이 된다고 하니, 먼나라 이야기는 아닌 듯 하다.
마치며.
장흥의 특산물, 장흥물축제, 우드랜드등 관광상품등의 재정자립도를 올리는 사항도 지자체에서 많이 노력을 하고 있음을 느껴질 만큼 동네가 활발하다. 장흥의 위치가 목포, 순천같은 곳에 붙어있는 곳이 아니라. 상권이 활발하고 소비순환이 잘되는 지역 같아 보였다. “돈이 순환이 되는 곳은 살만한 동네”라는 남편의 이야기처럼. 장흥은 마냥 시골로 퇴화되는 곳은 아닌 것 같다. 각종 복지정책과 한마음 한 뜻으로 인구늘리기에 힘쓰고 있어서 더욱 활기찬 동네가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전국생산량에 대부분이라는 키조개, 장흥표고버섯, 장흥한우 등 농축산 품목이 더욱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겠끔 지자체에서는 더욱 노력했으면 하며, 지역사회 일원인 장흥군민 한명 한명이 인구전도사로써 친절과 열정으로 살아간다면 장흥군은 잘 사는 동네, 사람 사는 맛 나는 동네가 될 것 같다. 9개월짜리 딸아이와함께 장흥인구를 2명이나 늘린 우리남편에게 상줘야 할 듯 싶다.
정착사례 수기 공모를 통하여, 글을 작성하면서 장흥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코로나19가 기승이지만 따뜻한 시골인심으로 잘 극복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