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에서 만난 안중근
- 작성일
- 2020.12.0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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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장흥 안중근 의사_최종_나레이션_1.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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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발의 총성 1909년 10월 26일 9시 30분 하얼빈역,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저격
"코레아 우라!" (대한국 만세!) 전 세계에 대한제국이 독립국임을 알린 외침
안중근 의사,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안중근 의사 유언중에서)
그러나 국권이 회복되었지만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의사의 유해.
분단된 조국, 살아남는 것이 전부였던 그 시절.
1952년 "이토록 의로운 분이 잊혀져서는 안된다. 국내에서 제사 모시는 곳이 없다하니, 안타깝다. 우리가 모시도록 하자."
장흥 유림 안홍천의 건의로 뜻을 모은 이들은 장흥, 보성, 강진에 살고있던 죽산 안씨 문중과 장흥 군민들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장흥군 죽산 안씨 문중의 '만수사'안에 또 다른 사당을 마련한다.
혈연, 지연, 학연도 없는 한 사람을 기리기 위해 만든 공간.
안중근 의사의 항일정신, 애국심, 평화주의를 잊지않기 위해 만든 한 칸 사당 '해동사'.(1955년 완공)
그리고 1955년 10월 27일 영정 봉안식에 함께한 안 의사의 딸 안현생과 조카 안춘생, 수많은 장흥 군민들.
이후 60년 넘게 해마다 잊지 않고 안중근 의사의 제를 모시는 사람들.
"전남 장흥은 안중근 의사가 다녀간 발자취가 있는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라를 지키고자 한 그의 뜻을 받들어 정성들여 모시고 있습니다."
전남 장흥에 흐르는 항일 역사의 발자취.
1800년대 말 동학농민운동의 마지막 격전지 석대들.
일본군에 맞서 항거했던 2,000여 명 농민들의 정신 동학농민운동기념탑.
1500년대 말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장군이 명량대첩을 준비한 수군기지 회령진성.
이 땅에 흐르고 있는 외세에 맞서 싸운 항쟁의 정신, 평화를 수호하는 정신.
그 정신과 만난 국내 유일의 안중근 의사 추모 사당 '해동사'(2000년 중건)
"앞으로 해동사는 장흥에 산재해 있는 항일 유적과 함께 우리 후손들의 삶 교육의 장으로 성역화 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특히 자라나는 학생들이 우리 장흥에 와서 안중근 의사의 애국 정신을 배울수 있도록 모든 기반 여건을 조성해 나가겠습니다." (장흥군수 정종순)
한결같이 안중근 의사의 자주 독립정신과 평화사상을 계승해온 사람들.
장흥군 '해동사'인근에는 2021년까지 사당 체험교육장과 애국탐방로 등 역사 체험의 공간이 조성될 예정이다.
장흥에는 안중근 의사의 혼이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