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8정자이야기편
- 작성일
- 2022.06.1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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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2
탐진강 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장흥 또하나의 역사 정자
장흥에 정자가 많았던 것은
장흥 선비들이 효·충·절의 정신을 실천하면서
학문을 연마했기 때문입니다.
장흥은 문림의향의 고을로 칭송받으며
수많은 문인과 의병이 배출되었습니다.
특히나 강변에 있는 8정자는
정말로 아름다운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1. 부춘정
부춘정은 광주·전남 8대정자 중 하나입니다.
수양버들나무와 물푸레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서
부춘정 원림으로 전라남도 기념물 67호로 지정되어 있고
1899년 한말 당시,
목숨을 던지면서 항일을 주장했던 송병선 선생님이 일주일간 머무르며 “정말 아름다운 강산이다. 삼정승과도 바꿀 수 없는 강산이다.” 라며 그렇게 찬양을 했듯이, 광주·전남 정자 중에 8대 정자로 뽑히는 곳입니다.
2. 용호정
이곳은 용호정입니다. 용 용자, 호수 호 자
바로 앞 10M 절벽에 흐르고 있는 용소가 있습니다.
용호정은 효 문화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1815년에 최영택이라는 분이 아침·저녁·낮 하루 3번씩 성묘하는 모습을 지켜본 최영택의 아들 최규문이 형제들과 협의해서 조그마한 쉼터를 마련하자 그래서 1828년에 한 칸짜리 정자를 지었습니다.
주변에 보이는 나무들은 20여종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남도지방에서는 보기 드물게 자라고 있는 떡갈나무, 후박나무, 황칠나무, 참나무 등 여러 나무들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우러러보는 효 문화를 상징하고 있는 곳이 아닌가.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3. 동백정
이 곳 정자는 동백정입니다.
1453년 지금으로부터 567년전,
수양대군이 단종 왕위를 빼앗느라 나라가 혼란스럽던 시절
정자를 지었던, 동춘 김린 선생은 계유정난을 일으킨 간사한 무리들의 꾀임에 싫증을 내고 관직을 버리고 이곳에 와서 심었던 나무들이 하늘 높게 곧게 자라고 있는 절의 정신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김린 선생의 절의와 유연한 심성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4. 사인정
이 사인정의 의미는 1453년에 계유정난이 일어났을 때. 김필 선생은 28살의 나이에 나라가 혼란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장흥지방에 내려와서 2년 동안 생활하면서, 주변 경관을 보고 앞 강물에서 낚시질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 후 후손들이 정자를 지은 후 김필 선생이 사인의 벼슬을 할 때 지냈다고 하여, 사인정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곳 사인정의 특징은 김필 선생이 가까이에서 세종대왕을 모실 때, 세종대왕과 나눴던 대화를 시문구로 만들어 사인정에 현판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장흥을 찾는 여행객들이 김필 선생의 절의 정신을 배우고 익히기 위해서 많이 찾고 있는 유명한 정자입니다.
5. 경호정
이곳은 경호정입니다.
거울 경, 호수 호,
호수가 거울과 같이 맑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이곳은 임진왜란 이후에 운암 위덕관 선생이 정착했던 곳으로 1964년도에 회은 위원량 선생이 거처하던 송암 정자가 있었습니다. 송암 정자를 문중에 기증을 하면서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학문을 교류 했던 장소로 활용되기 때문에 지금 현재 대학교수나 교단에 서는 많은 후인들이 근무하고 있어서 ‘박사마을’이라고도 합니다.
6. 창랑정
이 창랑정은 풍류를 즐기면서 정신 수양을 했던 곳입니다.
가까이에 흐르고 있는 장흥 예양강의 박림소를 보면서 정신을 재무장하고, 넓은 들판을 보면서 마음을 넓히는 산의 기상과 물의 유연함을 본받은 곳입니다.
1918년도에 해평 길씨 길행식 씨가 일제강점기 시대에, 울적함을 달래기 위해 이 정자를 지어서 이용하다가 1946년에 문중으로 기증하였고, 장흥군에 기탁하여 군에서는 2억원의 사업비로 현재의 정자의 모습으로 정비를 했습니다.
7. 영귀정
이 정자는 1923년도에 복재 위계민 선비가 건립을 했습니다. 원래 정자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장흥댐이 만들어지며 수몰되면서 2004년도에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영귀정의 정자 이름은 읊을 영, 돌아갈 귀, 장흥 예양강변에서 시 구절을 읊조리면서 하늘이 준 본성의 마음으로 돌아오라는 도교와 유교 동학의 의미가 포함되어있습니다.
8. 독취정
홀로독, 취할 취, 자연의 풍경에 홀로 취하다는 의미의 정자입니다.
1938년 김병용씨가 정자를 지어놓고, 이곳 풍광을 즐기면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1491년에 추강 남효온 선생이 이곳 풍광에 반해서 여러번 낚시를 하러 온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독취정 건물은 낡았지만 시인들이 이 곳의 풍광을 보고 시를 완성시켜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여덟 개의 이야기, 여덟 개의 정자
탐진강변 8정자 여행으로 역사와 풍류의 고장 장흥을 만나다!
장흥에 정자가 많았던 것은
장흥 선비들이 효·충·절의 정신을 실천하면서
학문을 연마했기 때문입니다.
장흥은 문림의향의 고을로 칭송받으며
수많은 문인과 의병이 배출되었습니다.
특히나 강변에 있는 8정자는
정말로 아름다운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1. 부춘정
부춘정은 광주·전남 8대정자 중 하나입니다.
수양버들나무와 물푸레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서
부춘정 원림으로 전라남도 기념물 67호로 지정되어 있고
1899년 한말 당시,
목숨을 던지면서 항일을 주장했던 송병선 선생님이 일주일간 머무르며 “정말 아름다운 강산이다. 삼정승과도 바꿀 수 없는 강산이다.” 라며 그렇게 찬양을 했듯이, 광주·전남 정자 중에 8대 정자로 뽑히는 곳입니다.
2. 용호정
이곳은 용호정입니다. 용 용자, 호수 호 자
바로 앞 10M 절벽에 흐르고 있는 용소가 있습니다.
용호정은 효 문화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1815년에 최영택이라는 분이 아침·저녁·낮 하루 3번씩 성묘하는 모습을 지켜본 최영택의 아들 최규문이 형제들과 협의해서 조그마한 쉼터를 마련하자 그래서 1828년에 한 칸짜리 정자를 지었습니다.
주변에 보이는 나무들은 20여종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남도지방에서는 보기 드물게 자라고 있는 떡갈나무, 후박나무, 황칠나무, 참나무 등 여러 나무들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우러러보는 효 문화를 상징하고 있는 곳이 아닌가.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3. 동백정
이 곳 정자는 동백정입니다.
1453년 지금으로부터 567년전,
수양대군이 단종 왕위를 빼앗느라 나라가 혼란스럽던 시절
정자를 지었던, 동춘 김린 선생은 계유정난을 일으킨 간사한 무리들의 꾀임에 싫증을 내고 관직을 버리고 이곳에 와서 심었던 나무들이 하늘 높게 곧게 자라고 있는 절의 정신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김린 선생의 절의와 유연한 심성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4. 사인정
이 사인정의 의미는 1453년에 계유정난이 일어났을 때. 김필 선생은 28살의 나이에 나라가 혼란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장흥지방에 내려와서 2년 동안 생활하면서, 주변 경관을 보고 앞 강물에서 낚시질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 후 후손들이 정자를 지은 후 김필 선생이 사인의 벼슬을 할 때 지냈다고 하여, 사인정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곳 사인정의 특징은 김필 선생이 가까이에서 세종대왕을 모실 때, 세종대왕과 나눴던 대화를 시문구로 만들어 사인정에 현판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장흥을 찾는 여행객들이 김필 선생의 절의 정신을 배우고 익히기 위해서 많이 찾고 있는 유명한 정자입니다.
5. 경호정
이곳은 경호정입니다.
거울 경, 호수 호,
호수가 거울과 같이 맑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이곳은 임진왜란 이후에 운암 위덕관 선생이 정착했던 곳으로 1964년도에 회은 위원량 선생이 거처하던 송암 정자가 있었습니다. 송암 정자를 문중에 기증을 하면서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학문을 교류 했던 장소로 활용되기 때문에 지금 현재 대학교수나 교단에 서는 많은 후인들이 근무하고 있어서 ‘박사마을’이라고도 합니다.
6. 창랑정
이 창랑정은 풍류를 즐기면서 정신 수양을 했던 곳입니다.
가까이에 흐르고 있는 장흥 예양강의 박림소를 보면서 정신을 재무장하고, 넓은 들판을 보면서 마음을 넓히는 산의 기상과 물의 유연함을 본받은 곳입니다.
1918년도에 해평 길씨 길행식 씨가 일제강점기 시대에, 울적함을 달래기 위해 이 정자를 지어서 이용하다가 1946년에 문중으로 기증하였고, 장흥군에 기탁하여 군에서는 2억원의 사업비로 현재의 정자의 모습으로 정비를 했습니다.
7. 영귀정
이 정자는 1923년도에 복재 위계민 선비가 건립을 했습니다. 원래 정자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장흥댐이 만들어지며 수몰되면서 2004년도에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영귀정의 정자 이름은 읊을 영, 돌아갈 귀, 장흥 예양강변에서 시 구절을 읊조리면서 하늘이 준 본성의 마음으로 돌아오라는 도교와 유교 동학의 의미가 포함되어있습니다.
8. 독취정
홀로독, 취할 취, 자연의 풍경에 홀로 취하다는 의미의 정자입니다.
1938년 김병용씨가 정자를 지어놓고, 이곳 풍광을 즐기면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1491년에 추강 남효온 선생이 이곳 풍광에 반해서 여러번 낚시를 하러 온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독취정 건물은 낡았지만 시인들이 이 곳의 풍광을 보고 시를 완성시켜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여덟 개의 이야기, 여덟 개의 정자
탐진강변 8정자 여행으로 역사와 풍류의 고장 장흥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