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소설 <샘섬> 무대, 장흥 가슴앓이 섬
- 작성일
- 2002.12.23 21:29
- 등록자
- 전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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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무엇인가. 이승우의 소설을 읽기 위해 던져 보아야 하는 오래된 질문이다. 이승우에게 '이야기'는 소설의 형식에 머문다. 이승우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도달하는 지점은 짙은 관념이 배회하고 있는 환각의 공간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편 「샘섬」은 치명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도 '이야기'는 사랑의 그 불가해성이라는 '관념'을 극점까지 몰고 가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기가 막히게 물맛이 좋은 샘과 함께 숲과 나무가 우거진 무인도가 있었다. 활천도(活泉島), 마을사람들이 샘섬이라고 부르는 이 곳은 바닷가 마을의 축복이었다. 그러나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광풍이 불어닥치면서 축복은 재앙으로 변한다. 산사람들의 '징집'을 피해 샘섬으로 숨어든 30여명의 장정들이 "이상할 정도로 쉽게 동굴을 찾아낸" 그 산사람들에 의해 어느 날 밤 집단으로 학살당한다. 이 사건 이후 샘섬은 황폐해지기 시작했다. 숲은 시들어 갔고 샘에서는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았다.
산사람들은 마을 장정들이 샘섬으로 숨어들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누구의 고자질이었을까. 두 사람이 살아 남기는 했다. 하지만 이들은 밤을 이용해 마을로 먹을 것을 가지러 갔다가 우연하게 그 자리를 피했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임신한 여자는 '감춰둔 남자'를 끝내 발설않고
샘섬 사건이 있은 후 바닷가 마을에서는 한 여자가 임신한 사실이 알려졌다. 1년 전에 샘섬의 그 동굴에서 지아비를 잃은 젊은 과부였다. 마을 사람들은 여인을 '멍석말이'로 '단죄'했다. 애 아빠의 이름을 대기만 하면 처벌을 사해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감춰둔 자기 남자'를 지키기 위해 멍석말이의 고통과 수치를 선택했다. 멍석을 폈을 때 여자는 새파랗게 질린 채 뱃속의 아이와 함께 죽어 있었다. 대외적으로 자살이라고 알려진 여인의 장례식이 끝난 후 한 사내가 마을을 떠났다. 샘섬에서 살아 남은 자 중 한 사람이었다.
소설은 모 잡지사 기자가 바다를 취재하면서 의문의 노인이 취하는 이상한 행동을 풀어 헤치면서 샘섬에 얽힌 사연을 밝혀내는 형식이다. 노인은 그 때 살아남은 자 중의 한 명이었다. 그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20여년 전, 노인은 샘섬을 "원래대로 푸르고 맑은 섬으로 만들기 위해" 도회지에서 번 돈을 모두 바치면서 온갖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노인의 모든 시도는 '완벽한 실패'로 끝났다.
몸쓸 병에 걸려 죽음을 목전에 둔 노인은 다시 고향 마을로 와 바닷가 조카집에 머물면서 샘섬의 동굴에 향을 피운다. 거센 폭풍우가 치던 어느 날, 일정한 간격으로 약물을 투여하지 않으면 '큰 일'이 날 터인데도 노인은 약병과 주사기를 두고 샘섬으로 가는 목선을 띄운다. 그렇게 그는 샘섬에서 생을 마감한다.
장정들이 숨어 든 장소를 산사람에게 일러바친 사람은 바로 이 노인이었다. 샘섬에 숨어든 남정네들 중에 여인의 남편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여인을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사랑이 그 정도로 치명적이라는 말인가. 작가는 특별히 설명하지 않는다. 노인의 말을 인용한, 이런 대목은 있다. "너무 젊었다고, 누구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하겠지만, 한 여자를 향한 불같은 열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분별력을 잃었다고, 그 여자만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세상이 다 망한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고…".
숱한 학살 이후 샘섬은 황폐로 치달아
작가의 고향은 바다다. 정확히 말하면 "파도가 담을 철썩철썩 때리는 모래밭 가까운" 해안선에서 그는 자랐다. 고향마을에서 작가의 '집안'은 유복한 편이었지만, 작가의 유년은 "몰락의 발걸음이 그렇게도 빨랐던" 집안 기운이 하강해 갈 때와 맞닿아 있다.
요절한 '천재' 아버지, 일찍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 어머니, 어느 순간부터인가는 큰댁에 기생해서 살아야 하는 처지 등의 이유 때문에 작가는 "고향에 대해 하등의 고마움도 느끼지 않았고, 심지어 경멸하기까지 했다"고 말한다.
등단 이후 20여년의 작품활동 기간 동안 고향에 관한 작품이 극히 드물고, 그나마 길게 에둘러서 말하는 방식을 택한 이유가 이 때문이지 않았을까.
말하자면 고향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샘섬」 「일식에 대하여」의 경우 장흥은 길흥으로 천관산은 청관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자전적 소설이랄 수 있는 「생의 이면」에서도 장흥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인간과 고향의 상관관계를 직접적으로 그리고 있는 「마음속의 지도」에서는 숱한 암호들이 작가가 나고 자란 장흥군 관산읍 신동마을을 이야기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자란 고향은 신평군 추곡면 하림리"라고 말하고 있다. 작가는 고백한다.
<나는 도시에서 10대와 20대를 보내면서,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면서도 고향에 대한 편견을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소설을 쓰면서도 나는 한동안이나 고향 이야기를 소재로 삼지 않았습니다. 일차적으로 내 소설의 경향 때문이지만, 꼭 그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고향은 내 오래된 기억의 가장 낮은 층에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고향에 닿지 않고 싶은 왜곡된 욕망이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나는, 왜 그런지 내 문학 속으로 내 고향을 가지고 가기가 싫었습니다. 문학 속으로 가지고 갈 자원이 하나나 있을 것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산문집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 중에서)
왜 나는 내 고향이 떳떳하지 않았을까
「샘섬」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고향에 대한 작가의 이러한 의식의 반영으로도 읽힌다. 샘은 여성성의 상징이거니와 마을 장정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숨어들었던 동굴이 곧 자궁이라고 한다면 틀린 말일까.
생명을 품어야 할 자궁이 죽음의 공간으로 변하면서 샘섬은 황폐해진다. 마치 이승우 집안의 몰락처럼. 고향을 떠난 '그'가 자신의 죄를 잊기 위해서 일에만 매달린 것처럼 이승우도 오직 소설만 썼다.
샘섬을 복원하려는 노인의 '현실적'인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자신의 죄를 씻을 수도 마땅한 벌을 받을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노인이 마지막으로 택한 방식은 그 자궁 속에 들어가 죽는 것이다. 몹쓸 병에 걸린 노인에게 어차피 죽음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노인에게 중요했던 것은 '동굴 속에서' 죽는 것이었고, 그 죽음마저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었다.
그것은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행위다. 샘섬이 복원됐다 한들 노인이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까. 노인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은 그 방법밖에 없었다. 희생제의(祭儀)를 통해 정신적인 구원에 이르기. 이는 이승우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문학의 유사종교적 기능에 천착한 까닭에 작가는 리얼리즘보다는 관념을 소설 쓰기의 목적으로 선택했다. 주술과 제의가 가지고 있는 영혼 치유의 기능을 소설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황폐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작가가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법이기도 했을 터이다.
<왜 나는 내 고향이 떳떳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내가 떳떳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떳떳하지 않았을까. 아,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존재의 기반을 폐하고자 하는 나의 낡고 오만한 자의식은 시간 앞에서 속수무책입니다. 시간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고향과의 거리가 반대로 좁혀지는 것을 느낍니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나의 문학이 고향을 향해 나아가는 낌새를 챕니다.…고향이 어찌 한낱 자연이겠습니까? 고향은 기억의 근원인 것을. 존재의 밭인 것을. 문학이 그것을 어떻게 외면하겠습니까>(산문집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 중에서)
처녀 가슴맹키로 이뻐서 가슴앓이섬
작가가 유년을 보냈던 '큰집'과 바다 사이에는 해안도로가 개설되어 있었다. 그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소설의 모태가 된 샘섬이 있다. 소설 속 샘섬과 연관시키기에는 아주 작았다. 사랑에 관한 소설을 구상하면서 작가는 고향사람들이 '가스마리(가슴앓이)'라고 부르는 이 섬을 떠올렸고, 한 여인을 독차지하기 위해 여인의 남편인 부하 장수를 죽음의 전장으로 보낸 성경의 '다윗과 밧새바'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치명적인 사랑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 「샘섬」은 '고향에 대한 부채의식' '종교와 문학에 관한 성찰' '욕망이 낳은 죄, 그리고 그 죄를 사하고자 하는 또 다른 욕망' 등의 관념을 동시에 헤집는다.
남해안의 작은 포구마을과 그보다 더 작은 가슴앓이 섬에서 세상사의 보편적 특질들을 길어 올리는 '관념'의 미덕을 「샘섬」에서 발견하게 된다.
해안선 한 구비에서 바다사내들이 장작불에 장어를 구워 소주잔을 돌리고 있었다. 그네들의 술잔 너머로 갯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가슴앓이섬이 출렁거렸다. 한 사내에게 물었다. 왜 가슴앓이 섬이죠?
"물 속 돌들이 얌전해, 튀어나온 구석이 없어, 돌섬인데도 아무 데나 배를 댈 수가 있어, 그랑께 처녀 가슴맹키로 이뻐서 가슴앓이라고 하지. 꼭 그런 것보담, 여기 사람 많이 살 적에는 처녀총각들이 가슴앓이섬으로 건너가서 많이 놀았어. 바닷가란 데가 툭 터져서 어디 꼼지락거림서 정분 나눌 데가 없거등. 그랑께 저 섬에서 가슴 애린 사랑 이야기가 많이 싹트지 않았것능가. 내 생각으로는 그래서 가슴앓이 아닌가 싶어."
이정우 기자 arrti@jeonlado.com
작가는 자신의 문학적 자양분을 이청준의 소설이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한다. 이청준에 대해 "문학에 운명을 걸게 만든 희망이자, 나 같은 재능으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높고 가파른 산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인지 추리소설적 기법과 끈질긴 심리분석 방법이 이청준의 소설과 많이 닮아있다.
"물은 고이지 않았는데 자꾸 퍼내야만 했었죠."
끼니를 거를 수 없듯이 지속적으로 소설을 써내야만 하는 처지여서 상상과 사유를 가다듬을 틈이 없었다는, 전업작가 시절을 회상한 이승우의 고백이다. 과연 그는 우리 나이로 스물세 살이 되던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에리직톤의 초상」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20년 동안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이" 소설만 썼으며 『세상 밖으로』 『생의 이면』 『목련공원』『식물들의 사생활』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등 대략 20권의 창작집을 냈다.
먹고살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는 하지만 사실 이승우의 작품은 "좋지만 잘 안 팔리는 소설"로 '악명'이 높다. 과연 이게 소설일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삶과 세계에 대한 짙은 관념적 성찰을 보여주었고, 그것이 이승우 소설만의 영역으로 인식되었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씨는 "너무 느리거나 신중해서…그가(이승우) 작품의 수나 이루어 놓은 작품세계의 크기와 무관하게, 자주 거론되지 않았다"고 평한 적이 있다. 반면에 이승우 소설들은 한국보다는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더 주목받았다. 서사(이야기)보다는 관념이, 방언보다는 신화·철학과 같은 보편언어가 소설의 뼈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1959년에 태어난 작가는 서울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수학했다. 1991년 『생의 이면』으로 제1회 대산문학상을 받았으며, 2002년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로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봄부터 조선대 문창과 교수로 와서 소설창작을 강의하고 있다.